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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술김에 임고 장수생이었던 내가 공부한 썰 풀게

사까라무 2018. 8. 1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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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단 지잡사립 사범대 나왔다
요즘엔 덜하지만 나땐 9급보다는 그래도 임고쪽이 쏠리던 때였다. 임고가 지금처럼 레드오션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당연히 장수생이니까 학번도 높겠지? 06학번이다. 근데 사대출신이면 알겠지만 사범대 가산점이 적용안되기 시작할 때 였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4점인가 그러니까 존나 큰거 였지. 게다가 내가 입학했을때부턴가 논술도 시작됐으니 어찌보면 2006년부터 임고가 레드오션이 될거라는 게 예측되었는지도.

나는 영어교육과 출신이라 순수 영어실력이 공시보다 임용고시에서 더 중요했다. 단순히 전공지식이나 교육학 지식보다 영어실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근데 현실적으로 국내에선 영어실력 쌓기가 어지간해선 어렵더라. 실제로 합격한 사람들 비율만 봐도 해외 어학연수나 교환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우리집은 가난했다. 당연히 어학연수나 심지어 교환학생도 꿈도 못꿨다 게다가 사립대니까 등록금도 다 내 빚이었고. 4학년때, 전업주부셨던 어머니도 백화점 알바하시면서 내 생활비를 충당해주셨다. 그래서 난 4학년때 공부에 올인했으나  두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물론 1차합격해도 2차 논술에서 떨어졌곗지. 

졸업하고 난 또 공부에 올인해서 공부에 매진하고 싶었으나 2년 연속 뒷바라지는 힘드셨는지 나보고 학교일을 시작하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학교 종일제강사 임고 병행했다. 근데 학원강사 해본 애들은 알겠지만 수업한시간이 업무 한시간보다 에너지소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당연히 퇴근하고 매일 공부해도 모자란데도 매일같이 공부하지 못했다. 사설 독서실도 일주일에 삼일다니던게 이틀 하루로 줄고 결국 하루도 안나가고 공부를 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년이 지나고..

그냥 어찌보면 학교에 그냥 계약직으로 뼈를 묻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박봉인데도 불구하고 또 재계약을 하려고 했다. 근데 재계약 조건이 수업시연이랑 영어면접이었다. 사년동안 전공공부를 그만 둔 상황에서 어찌보면 청천벽력이었지. 보나마나 개 쪽 다 당하면서 본전도 못찾고 재계약이 안될게 뻔할거라 생각했다. 물론 열심히 준비하면 재계약해서 또 일할수 있었지. 근데 면접이랑 수업시연 준비하면서 현타오더라. 내가 이렇게 준비해서 남는게 계약직이라면 뭐하러 준비해야하나.

담당부장한테 그 다음날 전화해서 난 그냥 공부하는게 제자들한테나 학교나 내 스스로에게 더 도움이 되는거 같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려 했다. 근데 그땐 이미 예전에 몇십명 뽑던 임고판이 아니었다. 나 초수때 오십명 뽑던게 열명도 안뽑았으니..

그래서 나는 공시를 시작했다. 그래도 영어교육 전공도 했고 공시영어는 먹고 들어갈거고 호봉도 인정될거니까. 2015년 지방직 영어 풀어보니까 25분만에 90점 나오더라. 이정도면 잘한가라고 그러더라고? 게다가 영어가 시간 가장 많이 뺏기는 과목이니 공부시간은 벌겠네 싶더라.

그래서 난 학교일하면서 그나마 모은돈이랑 실업급여받은 돈이랑 합쳐서 프패도 하고 책도사고 남은돈은 공시경비에 충당하면서 공시를 시작했다. 작년 3월에 시작했고 다음년도를 노렸기 때문에 사무자동화 자격증도 땄다.

한 10월쯤 돼서 돈도 다 떨어졌고 학원 알바하면서 공부할까도 생각했는데 이건 아닌거 같아서 고향집에 연락해서 딱 지방직끼지만 부탁드린다고 하고 군대 포함 10년간 타향 살이를 접고 고향에 돌아왔다. 

집근처에 방통대가 있더라. 내가 그래도 학교일하면서 차는 장만해서 차타고 출퇴근하면서 공부했다. 그렇게 딱 육개월 공부하고 국가직 일행에 합격했고 지방직도 합격했다. 흙수저니까 당연히 서울시는 원서제출도 안했고.

현재는 지방직 버리고 국가직 발령대기 중이다. 내가 솔직히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아니겠지만 내 스스로에겐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들 힘내라. 



한줄요약 : 영어 베이스있어서 합격함